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토 쓰토무 (문단 편집) === [[세이부 라이온즈]] 코치, 감독 시절 === 세이부 황금시대를 이끈 수많은 프랜차이즈 스타들 중 세이부 구단에서 아예 미래의 감독감으로 찍고 키운 선수다. 팀의 리더였던 [[이시게 히로미치]][* 다만 이쪽은 [[모리 마사아키]] 감독의 퇴임 직후 구단에서 직접 후임 감독직을 제안했으나 본인이 현역 연장을 위해 이 제안을 거절하고 FA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에 이적했다.], 핵심 주포 [[아키야마 코지]]와 [[키요하라 카즈히로]], 수비의 중추 [[츠지 하츠히코]]와 에이스 투수였던 [[쿠도 키미야스]], [[와타나베 히사노부]], [[궈타이위안]], 이시이 타케히로 등등을 줄줄이 [[트레이드]], [[FA 제도(일본프로야구)|FA]], 전력외통보 등으로 떠나보내면서도 은퇴할 때까지 끝까지 지켜낸 거의 유일한 선수가 바로 이토 쓰토무였다. 2001년 시즌이 끝나고 [[히가시오 오사무]] 감독이 자리에서 물러나자 세이부 구단은 이토를 은퇴시킨 후 곧바로 감독직에 앉히려고 했으나, 이토 본인이 현역 연장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데다가 제대로 된 지도자 수업을 받지 않고 바로 감독으로 취임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에 우선 2년간 [[플레잉코치|선수 겸 종합코치]]로 선임하여 계속해서 선수로 뛰면서도 코치 직무도 맡으며 지도자 수업을 받게끔 했다으며, 2년의 유예기간 동안 팀을 이끌 감독에는 [[이하라 하루키]] 작전코치가 선임되었다. 앞서 서술한 다른 선수들 같은 경우, 구단의 은퇴 권고 및 지도자 전임 제안을 거부하고 현역생활에 미련을 보이면 가차없이 방출해서 팀을 떠나는 것을 방관했던 것과 비교하면 천지차이. 그래서 세이부 황금시대의 주축 선수들 중에 온전하게 세이부에서 커리어를 마감한 선수가 거의 없다.[* 이토의 후임으로 부임한 [[와타나베 히사노부]]조차도 선수생활의 말년은 세이부에서 방출된 후 [[야쿠르트 스왈로즈]], [[대만프로야구]]로 이적하여 현역생활을 연장해야 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현역 말년인 2002년부터는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였고, 2003년 시즌 후 현역 은퇴를 선언함과 동시에 곧바로 세이부의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이때 나이가 불과 42세로 상당히 젊었던 편. 감독으로 부임 후 첫번째 해인 2004년에는 시즌 시작 전 [[마츠이 카즈오]]가 MLB [[뉴욕 메츠]]로 이적, 외국인 타자 [[알렉스 카브레라]]가 부상으로 전반기를 날린 탓에 전력 유출이 발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빈 자리를 그동안 기회를 못 받던 백업 선수들이나 신예들로 메꾸며 정규시즌을 2위로 마친 뒤 [[퍼시픽 리그 플레이오프|플레이오프]]에서 1위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를 꺾으며 2년 만의 [[퍼시픽리그]] 우승을 일궈냈고, 이어 진출한 [[2004년 일본시리즈|일본시리즈]]에서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이 이끄는 [[주니치 드래곤즈]]와 7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우승하며 '''12년 만의 [[일본시리즈]] 제패'''를 달성했다. 주니치와의 [[일본시리즈]] 당시, 상대였던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의 스타일은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인 '오레류(オレ流)'로 알려져있던 데 비해 세이부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던 이토의 감독 스타일은 정통파 스타일의 '레오류(レオ流)'로 일컬어지며 스타일의 대비로 화두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통파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와쿠이 히데아키]], [[키시 타카유키]], [[호아시 카즈유키]], [[카타오카 야스유키]], [[나카지마 히로유키]], [[나카무라 타케야]] 등 젊은 선수들을 중용하면서 팀의 세대교체를 도모하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른 팀으로 보내버린 황금시대의 주축 선수들 중에 지도자로 성공한 케이스가 거의 없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지도자로서 이토에 비견할 만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낸 황금시대 OB는 구마모토 공고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아키야마 코지]], 이토와 오랫동안 배터리를 이루었던 [[와타나베 히사노부]]와 [[쿠도 키미야스]]밖에 없다. 이들 중 쿠도는 전임이었던 아키야마가 일궈놓은 기반 아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퍼시픽리그]] 우승 3회, [[일본시리즈]] 우승 5회로 이끌며 2010년대 최강팀으로 세우는 업적을 이뤄냄으로써 지도자로써 가장 크게 성공했다.] 프랜차이즈 출신인 이토를 감독으로 선택한 세이부의 선택은 성공작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현역 시절부터 차기 감독으로 찍어놓고 다른 스타들은 받지 못한 배려까지 해주는 편의를 베풀어줬건만, 부임 첫 해 우승한 걸 제외하면 나머지 시즌은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고 급기야 감독 취임 4년차인 2007년에는 주축 선수들의 부진, 부상으로 침체를 겪은데다가 교류전 10연패를 찍으며 일찌감치 하위권으로 떨어져 다시는 올라오지 못했고, 결국 팀이 26년 만의 B클래스인 리그 5위로 떨어지면서 세이부 감독에서 물러났다. 게다가 세이부를 떠나면서 구단 측이나 선수들과의 사이에 불협화음이 있었던 모양으로, 현재 이토와 세이부 구단과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않은 상황. 여담으로 2007년 시즌 막판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은 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시즌 최종전을 가졌는데, 구단이 위로 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자 상대팀 호크스의 [[오 사다하루]] 감독에게 "제가 돈을 드릴 테니, 선배님이 꽃다발을 사셔서 경기 전에 저한테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